25년 전 영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토니 앳킨슨이 제안한 ‘참여소득’이 지구 반대쪽 한국 남해안의 한 어촌에서 싹을 틔워올렸다.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소득을 보장하는 참여소득 모델은, 시민의 ‘필요’에 근거해 지급한다는 점에서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활동의 전제가 공익적인 가치에 복무하는 것이므로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돌봄이나 환경보호, 사회적 관계 형성·강화 등 인간다운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다양한 일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무조건’ 주는 기본소득과의 차이점이다. 주민들의 해양쓰레기 정화활동을 기본소득 사업으로 발전시켜 4년째 마을 앞 바다를 가꾸고 보호하고 있는 경남 통영시 용남면 화삼어촌계와 선촌마을 주민들을 지난 20~21일 만나고 왔다. 20일 오전 정화활동을 마친 정정옥 부녀회장(왼쪽부터), 김둘례·최진연·박영순씨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마스크는 취재진의 요청으로 촬영 당시 잠깐 벗었다가 바로 착용했다. 통영/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어촌계원 40명, 가구 수 60여개의 작은 어촌 선촌마을에서 쿵, 쿵,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공익적이거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소득을 보장받는 ‘참여소득’ 실험의 심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소리다. 이 마을의 참여소득 모델은 지역 당사자인 주민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참여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이다. 3년 넘게 이어지며 거둔 유무형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21일 오전 10시께. 파란 견내량(통영시와 거제시 사이에 있는 좁고 물길이 센 해협)을 앞바다 삼은 경남 통영시 용남면 선촌마을의 화삼어촌계 사무실 앞에 마을 주민 네명이 모였다.
“형님, 오늘은 5구역 쪽으로 갈게요. 포대는 한 사람당 2개씩 들고 가고, 거기 안 들어가는 스티로폼처럼 큰 쓰레기는 적당한 위치에 모아놨다가 나중에 그물에 넣어서 안 빠지게 묶을게요.” 정정옥(53) 부녀회장의 설명이 끝나자, 목장갑을 낀 최진연(65)·김둘례(59)·박영순(60)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5구역은 마을을 감싸는 용남해안로를 따라 화삼어촌계 사무실부터 북쪽으로 약 600m 구간으로, 모래 해안 2곳과 선촌소공원이 포함돼 있다.
이들의 첫 목표물은 임시 적치 공간에 쌓아둔 스티로폼 등 대형 쓰레기. 화삼어촌계 사무실 바로 옆 해안으로 내려서자 초록색 그물망 안에 담긴, 족히 한 아름은 돼 보이는 스티로폼 부표 수십개가 눈에 들어왔다. 인근 굴·멍게 등 양식장에서 사용되다 부식되거나 버려졌다가 파도를 따라 이곳까지 떠내려온 것들이다. “주민들이 한 2~3주 정도 주워서 모은 것으로, 통영시청에서 다음주 월요일에 수거해갈 거”라고 정 부녀회장이 귀띔했다. 마을 사람들이 애써 주운 스티로폼이 바람에 굴러가지 않도록 그물망 입구를 단단하게 조여 길가 추락방지석에 묶느라 이들의 손이 바빴다.
이어 네 사람은 해안과 도로를 오가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한시간여 지났을까. 따로 모으는 부표 말고도 거기서 부서져 나온 스티로폼 조각, 소주병, 깨진 병 등 유리 조각, 먹다 남은 커피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컵, 파리채, 타일, 삭은 호스, 건축 폐자재, 포장재 등 각종 비닐, 무슨 물건의 잔해인지 추측하기도 어려운 것까지 ‘족보’도 다양한 쓰레기에 20리터짜리 포대 3개가 가득 찼다.
양식장 부표, 어업용 폐어구 등이
어지럽게 쌓여 있던 통영 선촌마을
주민이 쓰레기 치우는 아이디어로
소득벌이·환경보호 ‘두 토끼’ 잡고
‘참여소득’ 실험의 심장으로 활기
이들이 한 마을 청소는 지난달 시작된 ‘통영시 해양보호구역 관리사업’(이하 관리사업) 프로그램의 하나다. 해양보호구역은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어 생태적으로 중요하거나, 해양경관이 뛰어난 곳의 훼손을 막고 잘 보전하기 위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지정해 고시한다. 선촌마을 앞바다 1.94㎢는 지난해 2월 해양수산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됐는데, 이곳엔 잘피 서식지가 있다. 잘피는 얕은 바다에 사는 식물로, 해조류와 달리 뿌리·줄기·잎이 있어 뿌리로 양분을 흡수하고 잎으로 광합성을 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광합성, 즉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만들어내는 덕분에 잘피 숲은 다양한 해양생물이 알을 낳고 함께 살아가는 서식지다. 대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관리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시간당 1만원을 받는다. 주민들이 돌아가며 일을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받는 돈은 한달에 10만원 남짓이다. 최진연씨는 “한달에 세번 나오는데, 쓰레기 주워서 용돈도 벌고 마을도 깨끗해지니까 좋다. 안 그럼 잊어버리니까 달력에 당번날 표시도 해 놨다”고 말했다. 통영시는 이 사업 예산으로 인건비를 포함해 약 1억원을 배정했다. 정부 사업에 참여해 돈을 받으니 얼핏 정부의 여느 공공일자리 사업처럼 보이지만, 관리사업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해양보호구역 지정이 이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청으로 이뤄졌고, 사업의 내용도 정부가 아니라 주민들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관련 학계에선 이런 모델을 ‘참여소득’이라고 부른다.
마을 자원, 바다 환경 지키기
참여소득은 영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토니 앳킨슨이 1996년 ‘참여소득의 경우’(The case for a participation income)라는 논문을 통해 처음 제시한 소득보장 제도다.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일정한 소득을 지급한다는 게 기본 틀이다. 앳킨슨은 노동자나 자영업자처럼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질병이나 부상, 장애 등으로 일을 못 하는 사람, 노동능력이 있는 실업자, 승인된 형태의 교육이나 훈련 참가자도 ‘참여’를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어린이나 노인·장애인 돌봄, 승인된 형태의 자원봉사 등도 사회 공헌 활동으로 제시하는 등 그 기준을 폭넓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칠레의 참여소득 이론가 크리스티안 페레스무뇨스는 2018년 ‘미충족된 사회적 욕구’를 참여의 기준으로 제시하며 돌봄, 환경 보호와 정화 활동, 이민자 보호 활동 등을 예로 들었다. 참여를 얼마나 폭넓게 인정할 것인가의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공익적인 가치가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소득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오전 경남 통영시 용남면 선촌마을 앞 해안에서 주민 김둘례(왼쪽부터), 박영순, 정정옥, 최진연씨가 쓰레기 정화 활동을 하고 있다. 통영/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선촌마을의 경우 잘피 숲 등 이 지역의 해양생태계를 보호하려는 관리사업의 핵심은 해양쓰레기 치우기다. 화삼어촌계에 소속된 주민 18명이 두세명씩 짝을 이뤄, 편의상 5개 구역으로 나눈 마을을 월요일만 빼고 매일 청소한다. 해안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주워야 해, 물이 빠지는 시간(간조)에 맞춰 하루에 3시간씩 일한다. 관리사업에선 이들을 ‘해양환경관리인’으로 부르는데, 이날 당번인 최진연·김둘례씨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이 치운 곳은 육상인데 해양쓰레기와 무슨 관련이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바닷가 쓰레기가 만들어진 곳은 대부분 양식장이나 어선 등 해상이다. 화삼어촌계장인 지욱철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바다에 냉장고가 떠다니면, 사람들은 그게 ‘육상쓰레기’인 줄 안다. 아니다. 물고기 잡을 때 쓰는 미끼 보관용으로 배에서 쓰다가, 고장이 난 걸 바다에 그냥 버린 거다. 못 쓰게 된 플라스틱 부표부터 프라이팬까지, 대부분 양식업·어업에서 나온 해상쓰레기”라고 설명했다. 해양쓰레기 연구자인 장용창 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등이 2014년 국제 학술지 <오션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한국 해안가에서 수집된 플라스틱 쓰레기의 56%가 바다에서 발생한 해상 쓰레기였다. 설령 육상에서 생긴 쓰레기라 하더라도, 바다로 흘러가 또 다른 오염이나 생태계 교란·파괴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를 막으려면 미리미리 치워야 한다.
관리사업엔 마을 방문객의 잘피 채집을 막고 안전 지도를 하는 ‘명예 관리인’ 활동도 들어 있다. 선촌마을엔 ‘통영 아르시이(RCE) 세자트라숲’이라는 대규모 생태교육장 겸 공원이 있는데다, 부산 남구 용호동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탑까지 이어지는 남파랑길의 28코스가 이곳을 지나고 있어 휴일이나 방학 땐 “명예 관리인들이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로”(이보경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부장) 마을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르시이는 지속가능발전교육센터(Regional Centre of Expertises on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이며, 세자트라(sejahtera)는 지속가능과 공존을 뜻하는 말레이어다. 2005년 유엔총회 산하 유엔대학의 ‘지속가능발전교육 10년’ 프로그램을 추진할 거점도시로 지정된 통영시는 2015년 이 숲을 개장했다.) 이날 함께 쓰레기를 치운 박영순씨가 화삼어촌계 소속 명예 관리인 여섯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들은 2인 1조로 평소엔 공휴일, 방학 땐 매일 간조 시간을 전후해 5시간씩 활동한다. 잘피가 자라는 얕은 바다에 물이 빠지면, 드러난 갯벌에 방문객들이 들어가 마구 밟거나 잘피를 훼손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명예 관리인들은 때때로 박씨처럼 쓰레기 줍는 일손을 거들기도 한다.
화삼어촌계장을 맡고 있는 지욱철 통영거제환경운동엽합 공동의장. 이정용 선임기자
용돈벌이로 시작한 활동이…
처음부터 이 마을 주민들이 해양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있었거나,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사실 통영시는 2014년과 2017년 두차례 이 지역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 했지만, 주민들은 없던 규제가 생겨 어업·양식업, 수산물 가공 등 생업에 피해를 볼까 걱정해 거세게 반대했다. 그런 주민들이 불과 3년 만에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스스로 요구할 정도로 달라진 것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견내량 해양쓰레기 정화사업’(이하 정화사업)에 참여하면서였다.
정화사업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의 ‘나눔과 꿈’ 사업 공모에 당선돼 진행한 것으로, 관리사업보다 먼저 실시한 선촌마을의 첫 참여소득 모델이다. 옆 마을에 사는 장용창 소장이 해양쓰레기 수거와 주민소득 창출을 결합해 공모사업에 도전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 마을 토박이인 지욱철 공동의장이 제안서를 모금회에 냈다. 모금회는 3년간 총예산 5억원을 지원했고, 주민들은 돌아가면서 하루에 5시간씩 해양쓰레기를 치웠다. 마을 사랑방 구실을 하는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통영사무소)은 사업 관리와 운영, 교육 등을 맡아 정화사업이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했다.
“이젠 당번 아니어도 수시로 줍는다”
3년여 사업에 주민 의식 달라져
스스로 해양보호구역 지정까지 요청
경남도 참여예산 사업으로도 채택돼
도내 다른 지역으로 시범사업 확산
50~80대가 대부분인 어촌마을에서 일당 5만원은 제법 큰 돈이다. 주민들도 처음엔 용돈벌이로 정화사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박영순씨가 선촌소공원과 도로 사이 말끔한 배수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시작할 땐 저 배수로에 담배꽁초며, 술병이며, 컵이며, 스티로폼 조각이며 쓰레기가 가득했다. 그걸 우리가 전부 다 손으로 파내고 치워서 저렇게 깨끗해진 거다. 결혼해서 선촌마을에 산 지 40년인데, 한번씩 오빠가 놀러 와도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더니 요즘엔 ‘영순아, 너희 마을이 왜 이렇게 깨끗해졌냐’고 묻는다. 옛날에는 쓰레기를 그냥 태우거나 버리는 주민도 많았는데, 정화사업에 참여하다 보니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다. 내 당번 시간이 아니어도 쓰레기가 눈에 띄면 수시로 줍고, 숲이나 공원에 놀러 온 사람들이 쓰레기 버리는 걸 보면 가져가라고 말한다. 이런 게 생활화되니 산에 가도 예전 같으면 그냥 버렸던 과일 껍질까지 되가져오게 됐다.”
김둘례씨는 “22살 때 이 동네 시집와서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그거 하기 전까지는 쓰레기라는 건 아예 생각을 못 했다. 섬에도 올라가고, 쓰레기도 줍고, 교육도 받으면서 그제야 얼마나 더러운지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가 말하는 섬은 마을 앞 작은 무인도인 뱀섬, 방화섬과 등대, 여(바다에 있는 큰 바위) 등인데, 정화사업을 했을 땐 거기까지 배를 타고 가 쓰레기를 수거해 왔다.
1 2018년 3월22일 선촌마을 앞바다 방화섬에서 주민들이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2018년은 이 마을에서 해양쓰레기 수거를 고리로 한 참여소득 사업을 처음 벌인 때로, 당시엔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이날 주민들이 수거한 쓰레기는 900㎏에 이르렀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제공 2 선촌마을 앞바다에서 끌어올린 그물과 밧줄. 인근 양식장에서 쓰다 바다에 그냥 버려둔 것으로 수중 침적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을에서 2018~2020년 97차례 침적쓰레기 정화 활동으로 걷어올린 쓰레기는 166톤이 넘는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제공
산업잠수사에게 맡겨 100차례 가까이 바다 아래의 침적 쓰레기도 걷어 올렸는데, 대부분이 폐그물, 밧줄, 통발 같은 폐어구였다. 침적 쓰레기를 치울 때 필요한 바지선을 운전한 박태곤 삼화어촌계장(66)의 얘기다. “통영은 멍게, 굴, 가리비, 미더덕, 홍합 양식을 많이 하는데, 천재지변으로 밧줄이나 그물이 터지면 양식업자들이 그걸 수거 안 하고 그대로 바다에 둔다. 양식한 해산물을 채취할 때도, 딱 보고 상품이 안 되는 건 그대로 부표에서 잘라서 통째로 버리고 새 그물만 매단다. 멍게 양식장에서 지금까지 폐타이어를 1천만개는 썼을 건데, 수거된 건 10만개도 안 된다. 타이어나 밧줄은 안 썩지만, 그 옆에 있는 뻘은 썩는다. 물속은 정말 심각하다. 어업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볼락이고 놀래미고 숭어고 안 잡히니까 이제는 어업만으로 먹고살 수가 없다.”
여러 환경 캠페인 덕에 플라스틱 빨대나 페트병 같은 생활 폐기물이 해양쓰레기의 주범으로 지목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해양 플라스틱 수거 기술을 개발하는 비영리 기구 ‘오션 클린업’이 2018년 태평양의 거대 플라스틱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를 조사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어망이 46%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도 식별이 가능한 플라스틱 물체의 다수가 장어 덫, 밧줄, 그물 같은 어업·양식업 장비였다. 지욱철 공동의장은 “이런 상황을 주민들이 직접 보면서 달라졌다. ‘전에는 배 타고 고기 잡으러 가면 나오는 쓰레기를 그냥 바다에 버렸는데, 너희랑 청소를 계속하다 보니 이젠 양심에 찔려서 안 되겠다’며 포대를 받아가는 동네 형님들도 몇분이나 있었다”며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지속적으로 쓰레기를 치우자 잘피 숲도 넓고 풍성해졌다. 2017년 6만㎡였던 잘피 숲은 2년 만에 10만㎡로 늘어난 것으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통영교육지원청의 공동 조사에서 확인됐다. 그 종류도 기존에 있던 거머리말뿐만 아니라 애기거머리말, 포기거머리말, 해호말 등으로 다양해졌다. 지난해엔 잘피 이식에도 성공했다. 채소 모종을 작은 모종판에서 어느 정도 키워 밭에 옮겨 심는 것처럼, 잘피 모종 10개를 수중 모종판에서 기른 다음 바다에 옮겨 심었더니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50개로 늘어났다. 이런 긍정적인 성과 덕분에 내년부터는 정부 예산도 지원받는다. 본격적인 쓰레기 정화 활동이 어자원 확보와 대기질 개선에 도움이 되는 바다숲 조성사업으로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 앞바다의 잘피 숲을 살펴보고 있다. 잘피는 해양생물 다양성과 대기 정화 등에 도움이 되는 식물로, 이 마을의 상징 같은 존재다. 지속적인 해양쓰레기 정화 활동 결과, 마을 잘피 숲은 2년 만에 1.7배나 넓어졌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제공
해양보호구역 지정은 이렇게 선촌마을 주민들이 직접 쓰레기를 수거하고 달라진 환경을 체감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올해는 경남도의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주민공동체 기반, 민관 협업 해양쓰레기 수거사업’(수거사업)도 함께 진행한다. 주민이 직접 사업을 제안하면 심사를 거쳐 예산을 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은 참여소득 모델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제도 가운데 하나다. 장용창 소장은 지난해 해양쓰레기 수거 참여소득 모델 제안서를 냈는데, 경남도의 심사를 통과했다. 그 결과 선촌마을의 해양쓰레기 수거 참여소득 모델은, 비록 시범사업이지만 통영시 7곳 어촌계와 창원·거제·사천시, 고성·하동·남해군으로까지 확대됐다. 전체 예산은 5억원이고, 통영시엔 이 가운데 1억원이 배정됐다. 지난 20일 선촌마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통영사무소에서 열린 통영시와 어촌계 7곳 등의 수거사업 협약식에서 통영시청 쪽은 “통영에 어촌계가 더 많은데, 예산이 1억원이다 보니 권역별로 대표적인 곳만 선발하게 됐다. 시범사업이라 올해 (선발된 지역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사업의 지속성을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촌마을 참여소득 기획자인 장용창 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이정용 선임기자
아래로부터의 힘
어촌계원 40명을 포함해 60여가구가 사는 이 작은 마을은 이제 참여소득 실험의 ‘심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촌마을 참여소득 기획자 2인방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핵심이 ‘아래로부터의 힘’, 즉 당사자인 지역주민의 자발성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참여소득은 공익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대가로 소득을 보장받는다는 게 기본 원리일 뿐, 그 개념에 자발성이 반드시 포함돼 있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참여소득은 정부가 참여자가 할 일을 정해주는 공공일자리 사업(근로연계복지)이나 일자리 보장제, 구직 활동이나 취업 프로그램 참가를 전제로 급여를 주는 사회수당 등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광주시의 생활형 공공일자리 사업,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청년활력프로그램 등이 참여소득의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욱철 공동의장은 “청정 바다는 어민 손으로 만들어야 되고, 어민은 더는 바다의 가해자가 아니라 보호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공공일자리 등은 노동이나 노력을 제공한 대가로 돈만 받으면 끝이지만, 여기선 스스로 자기 지역을 치우기 때문에 애착이 달라졌다”며 “이게 책상머리에서 만든 사업으로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장용창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해양쓰레기 관련 국제 논의에서 제일 강조하는 게 사후 수거보다 사전 예방이 낫다는 거다. 그런데 한국은 대표적으로 사후 수거만 하는 나라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해양쓰레기 수거에 매년 600억원, 미국보다 많은 예산을 쓰는데 해양쓰레기는 줄지 않는다. 정부가 전문 수거업자들한테 돈을 주고 치워주니까, 어민들이 해양쓰레기는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민들이 ‘예산의 주인은 우리니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곳에 그 돈을 써달라’고 나서면 달라진다. 어떤 공공재가 공동체에 필요한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원을 효율적·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다층적인 공동체 안에서 공론이 이뤄지면서 주민 간 신뢰와 같은 사회자본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참여소득? 기본소득?
참여소득은 기본소득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애초 토니 앳킨슨이 참여소득을 제안한 건 영국에서 당시 시민소득으로 부르던 기본소득 논의가 활성화되면서였다. 그의 1996년 논문 ‘참여소득의 경우’를 보면, 1980년대 이후 영국 보수당 정부가 기존의 복지제도를 개편해 사회보험(국민연금, 고용보험처럼 가입자가 보험료를 납부한 뒤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급여를 받는 제도) 급여를 대폭 축소하자 자산조사 기반 급여, 즉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처럼 자산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에 의존하는 이들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당시 영국에서 시민소득은 축소된 사회보험의 대안처럼 인식됐지만, 앳킨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보험은 그것대로 확대·개선돼야 하고, 시민소득은 공공부조 의존도를 줄이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공공부조의 전제인 자산조사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불완전한 사회안전망을 만들며, 사회정책을 후퇴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 주자는 시민소득의 주장이 정치적으로 공고한 지지를 받기 어려우므로 그 대신 사회공헌 활동 참여를 조건으로 한 참여소득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단순하게 보면 지급 조건의 유무를 둘의 차이로 볼 수 있지만, 각종 ‘현금 복지’ 주장이 난무하는 지금 한국에선 참여소득과 기본소득의 관계를 좀 더 세심하게 따져보는 게 생산적인 논의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려면 우선, 어떤 기본소득이냐를 살펴봐야 한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기본소득은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다.
모두에게 똑같은 금액 주는 기본소득
이미 존재하는 소득 격차 줄이지 못해
불평등 해소에 크게 도움 되기 어렵고
최근 많이 거론되는 소액 기본소득은
“큰돈이 푼돈으로 흩어져” 비판 제기
‘완전 기본소득’은 국가가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실질적 자유를 누리게 한다는 기본소득의 본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것으로,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한 2010년대 중반 무렵 적극적으로 소개됐다.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인 필리프 판파레이스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지급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이 약 3만1500달러(약 3520만원)이니, 이것의 25%를 매달 준다면 656달러(약 73만3천원)가 된다. 개인에겐 최소 생계비 수준이지만, 이제 한국에서 완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간 400조원이 넘는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비판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최근 많이 거론하는 유형은 ‘범주형 기본소득’과 ‘공공부조형 기본소득’이다. 범주형은 청년 기본소득, 노인 기본소득, 농민 기본소득처럼 특정한 연령대나 집단 등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소득을 주는 것인데, 기존 복지제도의 사회수당과 다를 게 없다. 사회수당은 소득이나 재산과 무관하게 일정한 요건에 해당되면 복지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로, 아동수당이나 양육수당, 장애수당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부조형 기본소득은 공공부조와 똑같이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범주형과 공공부조형은 ‘기본소득’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이미 운영 중인 제도의 개선·발전을 둘러싼 것이므로 크게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모든 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라는 기본소득의 정의에서는 벗어나지만, 복지제도 확대를 추동할 논의가 풍부해질 수 있다는 차원으로 접근하면 무리는 없다.
문제는 ‘부분 기본소득’으로도 부르는 ‘소액 기본소득’이다. 유력한 대선후보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제안이 대표적이다. 그는 우선 연 20만원부터 50만원까지 몇년에 걸쳐 규모를 늘려가며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 중장기적으로 연 100만·200만~600만원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을 지난해 내놓은 바 있다. 연 20만~50만원을 주는 초기 연간 재정부담은 10조~25조원에 불과해 재원 마련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를 두고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장은 “푼돈 기본소득”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연간 10조~25조원을 들여도 국민이 매달 받는 돈은 1만6600~4만160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낸 책 <기본소득 비판>에서 “연간 200조~500조원짜리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현재 10조~25조원짜리 푼돈 기본소득이 거론된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0조~25조원은 기본소득에서 푼돈으로 모두에게 흩어지지만, 보편적 복지에서는 의미 있는 큰돈”이라며 “소액으로라도 푼돈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정치적 시도는 인정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회공헌활동 대가로 받는 참여소득
돌봄·건강 등 시장이 보상하지 않는
공익적 가치 창출에 적용할 수 있고
각자의 ‘필요’에 맞게 지원하므로
효율적·효과적인 자원 배분 가능해
근본적으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는 기본소득은 불평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미 불평등이 심각해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위험이나 필요의 정도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액수의 기본소득이라도 다른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무차별 지급’이 보편적 복지라는 착시를 불러일으키지만, 보편주의의 원리는 그런 게 아니라 아플 때, 일자리를 잃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놓였을 때 등 ‘필요가 생겼을 때 누구나’ 지원을 받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불평등한 상황에서 필요에 기반한 소득 보장을 하는 것은 차별이나 선별이 아니다. 각자의 1차 소득인 시장소득에서 이미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져 있으니, 부족한 사람에게 2차 소득인 정부 지원을 더 줘 불평등을 개선하자는 거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1차 소득과 그로 인한 불평등은 외면한 채 2차 소득을 똑같이 줘야 평등이라고 본다.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는 시각이 협소하거나, 시장 불평등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다. 필요를 따지지 말고 무차별 지급하자고 했다가 적정소득(완전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없으니 불안정한 계층을 호명했지만, 정작 그들은 지원하지 못한다.”
21일 오후 경남 통영시 용남면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통영사무소에서 열린 ‘2021년 주민공동체 기반, 민관 협업 해양쓰레기 수거사업’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협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사업은 선촌마을의 참여소득 실험이 경남도의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통영/이정용 선임기자
이렇게 보면, 참여소득과 기본소득의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소액 기본소득과 비교해보면,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액수는 비슷하다 하더라도 주민 스스로의 필요에 기반해 소득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플러스알파’까지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참여소득은 매력적이다. 선촌마을에서처럼 환경 정화뿐만 아니라 돌봄, 사회적 관계 형성 등 시장이 보상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유익한 모든 활동에 적용될 수 있다.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가령 지역의 노인들끼리 하는 동호회도 그냥 놀고먹는 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과 지역 경제 활성화, 지역 공동체 복원, 노인 돌봄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니 이들이 원하면 지원할 수 있지 않겠냐”며 “지역 일자리 80만개 창출이 정부 공약인데, 시장 일자리로만 제한하거나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참여소득기본법을 만들든 사회적경제기본법에 참여소득을 포함시키든 해서 제도적으로 참여소득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장용창 소장은 “지금까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시설 예산’ 따기 경쟁을 하느라 어마어마한 예산이 개발사업에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됐다. 김경수 경남지사도 경남 지역 발전에 필요하다며, 비용 대비 편익(B/C)이 0.72로 예비타당성조사도 통과하지 못했던 남부내륙고속철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개발사업 대신, 실제로 주민이 원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걸 지원하면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지겠냐”며 “정부가 보조금 사업에서 인건비를 지출할 수 있도록 지침 하나만 바꿔도 지방정부들이 주민 일자리를 만들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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