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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새 대북정책 "트럼프식 빅딜도, 오바마식 방치도 안한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대북 정책 검토를 완료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트럼프식 빅 딜’도, ‘오바마식 방치’도 계승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외교의 문을 열어놓고 유연하게 접근하되, 제재와 압박은 유지한다’는 게 큰 골자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철저하고, 엄격하며, 포괄적인 대북정책 검토를 마무리했다”며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밝혔다.
대북정책 검토 완료 소식은 이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먼저 보도하고, 백악관이 브리핑에서 이를 확인하는 식으로 알려졌다. WP는 전날 정부 고위 관료들과 인터뷰한 내용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종식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일괄타결(grand bargain) 및 지도자 간 외교를 추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위기에 대응하지 않고 거리를 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방식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 것”이라고 전했다. 북ㆍ미 정상회담 같은 깜짝 이벤트는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키 대변인도 “우리의 정책은 일괄타결 달성에 집중하지 않으며, (오바마 행정부의)전략적 인내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 로이터=연합뉴스
사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제재나 압박 같은 표현은 쓰지 않고 “우리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고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위 관료는 WP에 “우리가 고려하는 것들이 북한의 도발을 미연에 방지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제재와 압박을 확실히 유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발표한 대북정책 검토 결과에 대해서는 사전에 한·미 간 충분한 대화와 소통이 이뤄졌고 긴밀히 협의해 왔다”며 “한·미 외교장관 회담과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대북정책 추진 계획과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조·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과의 협상에 유연한 입장을 취하겠지만,
당장 제재 해제처럼 북한이 혹할 만한 제안을 먼저 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백악관의 공식 발언에서 수위는 조정했지만, 제재 유지를 통해 대북 협상력을 높인다는 원칙은 가져가겠다는 입장으로도 볼 수 있다. 또 고위 관료가
도발 가능성과 압박을 함께 언급한 것은 북한이 도발할 경우 상응하는 대응을 한다는 원칙 역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결과에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WP에 따르면 고위 관료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우리의 외교적 노력 지원과 유엔 대북 제재 이행 등 양쪽 측면 모두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던 김정은 위원장이 만족한 듯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월 8차 노동당대회에서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밝히며 미국이 먼저 움직이라고 요구했는데, 미국은 그보다는 제재와 압박 수위를 유지하며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협상에 나올 준비가 됐는지 탐색부터 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가 일괄타결, 즉 빅 딜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확인하며
단계적 접근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그간 북한은 ‘단계적ㆍ동시적 방식’을 주장하며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곤 했다. 비핵화 조치를 잘게 잘라 북한이 행동을 취할 때마다 상응하는 보상을 내놓으라는 식이었다. WP 역시 “미국 관료들이 직면한 많은 문제 중 하나는 부분적 비핵화 조치에 부분적 제재 완화를 해주는 식으로 단계적 접근을 했을 때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히 해체할 때까지 (비핵화 프로세스의)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고위 관료는 WP에 “이런 노력은 신중하고 조절된 외교적 접근”이라며
“최종 목표는 비핵화로 정한 상태에서 특정 조치(particular steps)를 취할 때 그에 상응해 제재 완화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건군절' 열병식에서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연합뉴스
이는 북ㆍ미가 비핵화 협상의 최종 목표를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로 합의하고→단계별로 어떤 비핵화 조치에 어떤 보상을 줄지 ‘패키지’를 규정한 전체 로드맵에 사전 합의한 뒤→북한이 약속한 특정 조치를 취할 때만→미국도 약속한 제재 완화 조치를 취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ㆍ미 간 협상이 결렬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북한이 최종목표 및 로드맵 설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줄기차게 영변 핵시설과 핵심 제재 5건을 맞바꾸자고 요구했고, 미국은 북한이 하려는 게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영변의 비핵화’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 윤곽은 외교가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은 ‘모범답안’이었다는 평가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북한을 직접 다뤄본 경험이 있는 숙련된 관료들로 채워진 만큼 애초부터 변수는 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새로운 ‘당근’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WP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싱가포르 합의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일관되게 요청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서 악수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하지만 이 역시 북한에 유인요인이 될지는 미지수다. 합의의 내용이 원론적인 수준인 데다, ‘북ㆍ미 간 신뢰 구축을 통한 새로운 관계 수립→한반도 평화체제 수립→북한의 비핵화 노력’ 순서로 구성된 게 오히려 갈등의 불씨를 낳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순서대로 평화체제 구축이 먼저라고 주장했고, 미국은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WP는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폐기하지는(jettison) 않을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합의의 이런 허점을 인식하고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관건은 역시 디테일이다. 정부는 한ㆍ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보다 공식적인 방법으로 구체적 방법론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한 관리하려는 듯한 노력도 엿보인다. WP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핵을 모두 제거해야 제재를 모두 푼다’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식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는 볼턴이 주장해온 선(先)비핵화 후(後)보상 원칙의 ‘리비아식 일괄타결 모델’을 북한이 극도로 꺼린다는 점을 바이든 행정부 역시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 검토 결과를 북한에도 전달할 계획인데, 어떤 채널을 통할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의미 있는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북ㆍ미 간에 e메일을 통한 기본적인 소통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2021-05-02 01:24:1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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