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당대표 체제, 이재명에게 유리할까 - 경향신문
여·야 지도부 교체 후 유력주자들 행보는
당대표 선거가 끝나고 본격레이스가 시작됐다. 대선. 내년 3월까지 남은 시한은 10개월이다.
국회 앞 여의도는 이사철이다. 여야 당대표, 원내대표 경선을 위해 개설됐던 사무실이 빠지고 새로운 간판 없는 사무실이 여기저기서 들어서고 있다. 유력 대권주자들과는 공식적으로 무관한 사무실이다. 대선주자는 아예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직접 관련될 경우 선거법 위반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권후보와 무관하게 ‘알아서’, ‘자력으로’ 만든 사무실이다.
주요 대선주자들은 이들 국회 앞 신생단체가 연 공식행사에 얼굴을 내민다. 그게 보증이다. 신참 인사들이 이 단체를 믿을 수 있는지를.
사실 대선은 여타선거와 급이 다르다. 당장 총선만 하더라도 유권자 3만~4만명을 확보하면 50%를 넘길 수 있다. 입후보자들이 얼마나 많은 자신의 지역구민을 만나고 그들의 민원을 들어주냐에 따라 결과가 결정된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를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다시 대선은 다르다. 행사를 하고 조직을 만든다고 그게 실제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다. 오랜 선거컨설팅 경험을 가진 김성순 시사평론가는 “대선은 조직싸움이 아니다. 조직으로 치면 이회창이 자신이 도전한 세 번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고 말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공중전이다. 후보자의 말 한마디, 언론에 비치는 행동이나 표정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필요하다.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는 박용진 의원도 ‘온국민행복연구소’라는 싱크탱크를 올해 초 여의도 국회 앞 성우빌딩에 열었다. 좌장은 생태경제학자 우석훈 교수가 맡고 있다. 박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무실이 너무 좁아 우 교수 등은 상근하지 않고 1주일에 두 번 여는 회의에만 참석하고 있다”라며 “주로 중요한 어젠다를 세팅하고 주요 정책이 나올 때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 송영길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 ‘선거공학’
송영길 당대표라는 선거결과가 정치공학적으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유리하다는 데는 대부분의 정치·시사평론가가 동의하고 있다.
‘호남 당대표+영남 출신 후보’라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주자 빅3 중 나머지 둘, 이낙연·정세균은 모두 호남 출신이다. 호남 출신 당대표·후보는 국민호소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울산시장 출신인 김기현 원내대표 선출은 앞으로 치러질 당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종전의 유력 당대표 주자였던 대구 출신의 주호영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도로영남당’이라는 외양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보니 지난 서울시장 당 경선에 출마했던 나경원 당대표 유력설이 떠오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공학만 고려한 대권방정식이다. 실제의 정치적 과정은 훨씬 역동적이다.
대권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유력 여권주자들의 공개 움직임이다.
그동안 암행으로 이뤄졌던 대권행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 측은 당대표 경선 다음 날부터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성장과 공정포럼(성공포럼)’ 가입신청서를 받기 시작했다. 좌장격인 4선 정성호 의원뿐 아니라 김영진·김병욱 의원 등이 이재명계 핵심 의원들도 나선다. ‘원내교섭단체 이상으로’ 의원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내 2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측에서는 5선 정책통 조정식 의원의 참여를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국난극복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시절, 조 의원은 운영지원단장을 맡으면서 총괄했던 ‘인연’이 있었다. 이 전 대표 측에서는 “원래부터 이낙연 계보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끌어올 수 있었는데 뺏긴 것은 후보자의 한계”라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조정식 의원과는 이 지사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뒤 인수위에서 이한주 현 경기연구원 원장과 공동상임위원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고 이 지사 측은 말한다. 조정식 의원은 성공포럼과 별도로 ‘민주평화광장’이라는 이재명계 전국 네트워크 플랫폼의 좌장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평화광장(광장) 측 관계자는 “민주당의 ‘민주’와 경기도 도정가치인 ‘평화’, 그리고 이해찬 전 대표의 연구재단인 ‘광장’이 추구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이해찬 전 당대표가 이 지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조정식 의원은 이해찬계 핵심인사로 거론돼온 인물이다. 반면 이해찬 전 대표의 의중이 이 지사에 실린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해찬 전 대표가 기본소득을 강조해온 이재명 지사에게 “기본소득은 틀렸으며,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한 도울 수 없다”고 통고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 대표로부터 직접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최운열 전 의원에게 확인요청을 했다. 최 전 의원은 “대략 내가 들은게 그런 내용인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김종인 민주당 당대표 시절, 김종인의 복심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 최 전 의원은 현재 이낙연 전 대표를 돕고 있다.
■ ‘민주·평화’ 이재명과 ‘환경·청년’ 이낙연
민주평화광장 관계자는 “‘광장’은 딱히 특정한 단체 중심으로 하는 것은 아니며 설령 기존 평화시민단체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도 개인자격으로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아직 지역단위 조직 등 구체적 일정은 잡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주평화광장은 5월 12일 상암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에서 공개 출범식을 열 계획이다.
이재명 지사 측이 ‘민주’와 ‘평화’와 같은 가치를 콘셉트로 조직을 하고 있다면 2위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 측은 ‘환경’과 ‘2030청년’과 관련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보궐선거 후 오랫동안 잠행한 이낙연 전 대표는 5월 4일 중소기업중앙회·경총을 방문해 청년채용을 늘려달라고 발언하는 공개행보를 했다. 이후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 전 대표는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청년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는데 대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라며 “국가가 청년의 삶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이나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이 있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잠행기간 중 이낙연 전 대표 행적도 같은 콘셉트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추월의 시대>에 필자로 참여한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을 비공개로 독대했다. 캠프와 하 소장 등에 따르면 새로운소통연구소는 지난 보궐선거 이후 1000여명의 20·30대들로부터 이야기를 수집해 분석했는데, “그 분석내용을 듣고 싶다”며 이낙연 측이 요청해 만남 자리가 이뤄졌다. 독대는 2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지사는 수첩을 꺼내들고 하 소장의 이야기를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 핵심관계자는 “일회성으로 만난 것이 아니며 차후에 공식적으로 만남 결과를 다시 공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앞 여의도에는 연대와 공생, 생활ESG행동본부, 정의평화포럼, 우분투패밀리, NY포럼 등 여러 이낙연 측 조직이 포진하고 있다. 대부분 이낙연 전 대표가 이 지사와 함께 2강을 형성하고 있을 때 만들어진 조직이다.
일부 보도에서는 국회의원 싱크탱크 조직 ‘더좋은미래’를 이낙연계 당내 지지모임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이 인사들 사이에서는 최근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경기도 산하 기관장으로 내정된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에 이어 오세훈 시장으로 교체 뒤 나온 서왕진 전 서울연구원장 역시 경기도로 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주군’을 잃은 박원순계 인사들이 이재명 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낙연 캠프 측 인사는 “실제 시민운동 출신이나 민평련계로 불리던 인사 중 많은 사람이 이재명 측에 결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재명으로 대세가 기울었다고 평가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기후위기 관련 의제는 ‘생활ESG행동’을 들고나오면서 이낙연 쪽이 선점한 모양새다. 안치용 한국CSR연구소 소장이 이 단체의 시민행동 본부장을 맡고 있고, 김은정 소비자기후행동 대표, 김정희 아이쿱생협연합회 회장, 문은숙 전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실장, 김혜애 전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 등 환경·소비자 단체인사들이 대거 결합한 모양새다.
이낙연 측은 5월 10일 연대와 공생 심포지엄을 통해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내 삶을 지켜주는 NY노믹스’라는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대선출사표 격인 대담집도 5월 중에 발행할 계획이다.
■ 야권후보 윤석열, 언제 등판할까
<수상록>이라는 책을 낸 정세균 전 총리는 역시 대선경선 출마 예정인 김두관 의원을 만나는 등 본격적인 대선행보를 시작하고 있다.
정 총리 측에서는 선거 180일 전으로 규정된 경선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당헌당규상 규정돼 있는 180일을 고집해 9월에 후보를 선출하는 경우, 흥행도 보장 못 하고 120일 전에 후보를 내는 국민의힘 측으로부터 후보로 선출된 대권주자가 공격만 받게 된다는 것.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송영길 신임 당대표가 대권주자 일각에서 나오는 경선연기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80일 전으로 규정한 경선 룰은 이해찬 당대표 시절에 만든 것인데 이 룰에 손을 대는 순간 당이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엄 소장은 “실제 6명을 뽑는 민주당 경선에서 빅3를 제외하고 안정권은 추미애 정도”라며 “6명을 뽑는 1차 경선에서는 결국 남은 두자리를 두고 임종석, 김두관, 이광재, 박용진 등이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주자 선출 이전 아직 당대표 경선이 남은 야권은 어떨까.
지난주 민주당 초선과의 대화자리에 초청됐던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윤석열의 경우 다른 엘리트와 달리 고시에서 여러 번 떨어지는 등 인생의 추락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내공이 있는데 민주당이나 진보 쪽에서는 자기 기준으로 그 내공을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그런 점에서 윤석열은 그동안 엘리트로만 살다가 갑자기 제3후보로 나타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그럼에도 윤석열이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간다던가, 대통령으로서 준비된 인물이라든가 대통령으로서 비전을 갖춘 인물이라고 말하기에는 회의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엄경영 소장은 “선거 120일 전 선출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뽑힌 뒤 한달 정도를 야권단일후보 결정기간으로 본다면 야권의 대권후보 결정 마지노선은 올해 이내로 봐야 한다”라며 “현재의 구도로 볼 때 윤석열이 출마한다면 최소 2~3개월은 독자행보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경우도 과거의 사례에 비춰보면 출마 선언은 늦어도 8월에서 9월 초에는 해야 대선준비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2021-05-08 08:15: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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