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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February 8, 2021

부엌은 미래의 스마트 키친을 꿈꾸는가? -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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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인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평소라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일 가족 생각에 한창 들뜰 때지만 코로나19가 여전하면서 명절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귀성할 수 있는 사람 수도 크게 줄었다.

그래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은 하나둘씩 찾아올 자식들을 위한 명절 음식 준비에 분주하다. 부모님댁 등 친지 방문을 포기한 경우라도 긴 설 연휴 기간 동안 삼시 세끼 챙겨 먹을 일이 만만치 않다. 이번 설 연휴에 귀성을 하든, 하지 않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불과 물이 공존하는 작업 공간

주방은 음식을 만들거나 차리는 공간으로, 과거에는 부엌이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렸다. 영어로는 키친(Kitchen)이라 하는데, 라틴어로는 불을 사용하는 곳을 의미하는 코키나(Coquina)가 옛날 영어인 쿠치네(Cycene)를 거쳐 현재의 키친이 되었다.

주방은 집안에서 상당히 특이하고 이질적인 공간이다. 일단 눈에 띄는 가장 큰 특징은 영어의 어원처럼 집안에서 불을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불을 다루게 된 선사시대 인류가 처음 정착한 다음 취사와 난방을 위해 움집 한가운데에서 불을 피웠는데, 신석기인들이 남긴 그 흔적을 주방의 기원으로 본다. 불 때문에 음식물 조리와 난방은 수천 년 동안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했다.

주방은 욕실과 더불어 집안에서 물을 사용하는 흔치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물은 직접 먹는 식수가 되는 동시에 위생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주방에 물이 있기 때문에 오염된 음식재료를 씻고 밥 먹는데 필요한 식기류 등을 설거지할 수 있다.

주방은 먹는 것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음식물을 만드는 일은 식재료 다듬기에서 시작해 깨끗하게 씻기, 적당한 크기로 썰고 자르기, 가열하고 조리하기, 양념하고 간 맞추기, 상 차리기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면서 손이 많이 가고 난도도 높다. 특히 한국 음식은 밥과 국에 반찬들을 동시에 준비하기 때문에 한층 더 복잡한데, 이 때문에 부엌일을 하면 하루에 십 리를 걷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주방에서 효율적인 동선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미료, 장류를 비롯한 각종 식재료는 물론 냉장고와 밥솥, 가스레인지 등 크고 작은 주방기기들과 냄비, 팬, 칼·도마 등 다양한 조리도구들이 필요하다. 또한 밥그릇, 접시, 수저 등 식사용품들과 반찬통, 물병 등 보관용품들에 위생 비닐, 키친타월 등 비품들까지 주방에 필요한 용품들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일반적인 가정집 주방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가지 수만 200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따라서 주방에서는 집안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빈틈없는 수납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널리 사용되는 ㄱ자형 주방(왼쪽)은 가장 무난한 구조다. 평수가 넓은 경우에는 ㄷ자형 주방(오른쪽)이 많이 사용된다. ⓒ 한샘

이러한 다양한 특징들로 인해서 주방은 집안에서 배열이 가장 다채로운 공간이 된다. 일자형 주방은 개수대와 가열대, 조리대 등 작업대를 일렬로 배열한 형태인데, 차지하는 공간이 적어 아담한 집에 적합하다. 배관과 배선을 집중시켜 경제적이지만 작업 동선이 길어지고 조리공간이 좁게 느껴지는 단점이 있다.

ㄱ자형 주방은 맞닿은 벽면의 한쪽에는 개수대를 나머지 한쪽에는 가열대 등을 ㄱ자 모양으로 배치하는 형태다. 널리 사용되는 가장 무난한 구조로, 작업대가 90도 각도로 배치되면서 삼각형 동선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한쪽에는 작업대가 없는 여유 공간이 있어 두 명이 동시에 음식을 만들어도 동선이 크게 꼬이지는 않는다.

ㄷ자형 주방은 3면에 작업대를 배치한 짜임새 있는 형태이다. 작업 동선이 단축돼 효율적이고 수납공간도 넉넉하다. 식탁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며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 비교적 넓은 평형일 경우 적용이 가능하고, 두 명이서 동시에 음식을 준비할 때는 동선이 꼬여 불편할 수 있다.

병렬형(二) 주방은 보통 1m 내외인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두 벽면에 작업대를 적당히 나눠 배치하는 형태다. 개수대에서 작업하다가 뒤돌아서면 가열대나 조리대가 있는 형태기 때문에 동선이 매우 짧고 효율적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방이 독립적인 방으로 돼있는 경우 등에 적용 가능한 흔하지 않은 형태다.

이 외에도 일자형 작업대에 반도처럼 방안으로 작업대를 돌출시켜 배치하는 반도형 주방과 일자형 작업대 앞에 섬과 같은 작업대를 추가 배치하는 섬형(아일랜드형) 주방이 있다. 이들 주방의 동선은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으나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하나로 통합된 거실과 식당, 주방

한국인의 주거공간인 아파트에서 주방은 대부분 식당과 거실과 특별한 경계가 없이 연속되는 공간 형태로 나타난다. 거실(Living Room)과 식당(Dining Room), 주방(Kitchen)이 통합된 형태를 영어 앞 자를 따러 LDK형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발전한 특유의 공간 형식이다. 세 공간의 통합이 놀라운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세 공간은 전통적으로 전혀 다른 성격과 위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 아파트 평면에서 LDK 형성 과정의 특성’  참고)

거실은 전통주택에서 마루를 계승한 장소이다. 마루는 생활상 기능과 공간적 의미는 신성 공간의 성격이 강하며 집안 내에서 높은 위계를 지닌 공간이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TV 사극 드라마에서 대감이 뒷짐 찌고 서서 “게 아무도 없느냐?”고 외치는 대청마루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반면 과거 부엌은 TV 사극 드라마에서 대감이 찾을 때 “쇤네, 여기 있습니다요.”라고 외치며 하인이 뛰쳐나오는 장소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부엌을 소유한 자와 부엌에서 일하는 자가 서로 달랐다.

전통적인 부엌에서는 난방을 위해 온돌 바닥 아래에 아궁이가 설치되고, 그 위 부뚜막이라 부르는 공간에 커다란 가마솥을 올려놓고 밥을 하고 국을 끓여야 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 보면 매캐한 연기에 검댕이 날리는데, 그 안에서 생선을 다듬고 야채를 씻고 음식을 볶으려면 수라장이 펼쳐진다. 전통 부엌에서는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이는 부엌이 더러워지기 쉬운 작업장이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편 식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특이한 공간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식탁은 소반이나 교자상 등 이동이 가능한 형태였다. 다시 말해 상을 펼치면 그 순간부터 어느 장소든 식당으로 기능했다. 식당이 상당히 기능적이면서 유연한 공간이었다는 점은 눈여겨볼만 하다.

1960년대 나타난 주방 분리형(L+K형)과 1970년대 가장 많았던 식당-주방 통합형(L+DK형), 그리고 1980년대부터 대세가 된 거실-식당-주방 통합형(LDK형)의 흥망성쇠. ⓒ ‘한국 아파트 평면에서 LDK 형성 과정의 특성’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단지들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아파트의 주방은 전통적인 부엌을 그대로 계승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주방은 거실과 완전히 분리된 형태(L+K형)였고, 밥상을 날라 방이나 거실에 음식을 차렸기 때문에 식당은 별도로 없었다.

마루로 마감된 거실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된 주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문을 열고 신발을 신어야 했다. 연탄보일러가 도입되면서 취사와 난방이 분리된 것은 그나마 다행. 그전 연탄아궁이를 쓰면 온돌 구들장으로 인해 주방은 거실보다 2계단 정도 높이가 낮아야 한다. 신발을 신었다 벗었다 하면서 무거운 밥상이나 설거지통을 나르는 일은 생각만 해도 고역이다.

1970년대는 아파트가 곳곳에 건설되면서 대량으로 보급되던 시기인데, 주방이 별도의 격리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인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만 서구식 입식 생활이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식탁을 둘 자리를 원했는데, 식사 공간과 조리 공간이 결합된 다이닝 키친(L+DK형)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이닝 키친에 갈 때 신발을 신을 필요는 없지만, 거실과 다이닝 키친 사이에 보통 여닫이문을 설치해 물리적으로 구획했다.

이 시기부터 아파트에 지역난방이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난방기술의 발전은 주방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지역난방을 통해 각 가정으로 충분한 열 공급이 가능해지자, 주방에까지 바닥난방이 설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주방의 경계가 흐려지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1980년대가 되면서 드디어 아파트 내에서 거실과 식당, 주방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가 사라졌다. 거실과 식당, 주방 통합형(LDK형)이 등장해 현재까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 주방 평면 유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인의 식생활 공간 형태인 LDK형이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식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통적으로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위계를 가진 거실과 주방을 중간지점인 식당이 등장해 서로이어줬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이 숨 쉴 미래의 스마트 주방

요즘 소위 ‘먹방’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맛집을 찾아 크게 한입만 먹든, 나 홀로 살며 혼밥을 즐기든, 모르는 집에 가서 한 끼를 얻어먹든, 삼시 세끼 어렵게 차려먹든, 자연인을 만나 대충 만들어 먹든, 먹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행복을 느낀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힘든 노동의 영역을 벗어나 즐거운 취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음식을 만드는 공간인 주방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도 바뀌고 있다. 음식 조리나 식사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주방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가족들과 소통의 공간, 화합의 장소가 되면서 4인 이하의 가구에서도 6인용 식탁을 사용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식탁에서 전기 콘센트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선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올해 1월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21’에서 선보인 삼성전자의 패밀리허브(왼쪽)와 스마트싱스 앱(오른쪽).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식단과 조리법을 추천하고 보관 중인 식료품 관리를 도와준다. ⓒ 삼성전자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서 주방은 향후 주택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공간이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주방에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스마트 키친은 더 이상 공상이 아닌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냉장고는 전 세계 내로라하는 가전업체들이 가장 주목하는 스마트 장비다. 냉장고가 보관하는 음식의 신선 유무와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관리하고, 가까운 마트 할인정보를 검색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다. 가족 구성원이 섭취하는 음식물을 확인하고 영양소를 고려해 식단을 제안하는 영양사 역할까지 한다.

불을 사용하는 가스레인지는 일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발생 걱정이 없고 높은 열효율로 조리시간을 줄일 수 있는 인덕션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정해진 위치에 올릴 필요 없이 키친 테이블 위에 냄비를 올리면 냄비와 접한 면의 인덕션 코일만 작동돼 조리가 진행된다. 조리하는 냄비 주변에는 요리 방법과 타이머가 떠서 요리를 도와준다.

요리를 할 때는 주방 후드가 실내 공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자동으로 작동한다. 3D 프린터로 음식물을 담을 그릇을 만들 수 있는데, 먹고 싶은 음식까지 프린트해 줄 날이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 키친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로봇 요리사도 개발됐는데, 5000여 가지가 넘는 음식을 요리하고, 요리가 끝나면 스스로 청소까지 할 줄 안다.

아파트에서 주방이 단절된 문을 없애고 식당을 통해 거실과 연결되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스마트 키친이 과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보급될 수 있을지는 기술적 완성도와 제품의 경제성, 사회적 수용성 등이 결정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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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08, 2021 at 04:03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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