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테크노파크 앞 가로수들. 이런 나무들은 절단면을 통해 세균이 침투해 나무가 썩고 전복될 수도 있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제공
지난달 28일 ‘
벌목 수준 가지 없는 가로수, 왜 이렇게 많나 했더니…’ 기사가 나가고 난 뒤 “화난다”, “안타깝다”는 반응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물론 사람에게도 해롭다는데, 이런 과도한 가지치기가 해마다 반복해서 이뤄지는 이유가 뭐냐”는 후속 취재 요구도 많았습니다. 2일 <한겨레>가 시민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 최진우 대표와 서울시 조경과 관계자 그리고 익명을 요구한 인천의 한 조경업체 대표 ㄱ씨에게 물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인은 제도 미비와 잘못된 관행, 그리고 시민들의 무관심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근간에는 비용 문제가 민감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로수 가지치기에 대한 법적 근거는 ‘가로수 조성 및 관리규정’(산림청 고시)이 유일합니다. 이 고시에는 병·충해 피해를 보았거나 쇠약한 가지 등을 가지치기 대상으로 규정할 뿐, 어떻게 얼마만큼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제시돼 있지 않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가지를 칠 때 쓰는 강전정(강한 가지치기), 약전정(약한 가지치기) 등의 용어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한국표준품셈’에 등장합니다. 한국표준품셈이 중요한 이유는 지자체나 공공기관 가지치기 ‘공사’를 발주할 때 비용 산출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민간도 이를 준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로 입장이 다른 세 사람이 과도한 가지치기의 1번 원인으로 꼽은 것도 이 ‘한국표준품셈’입니다.
“강전정은 수목의 정상적인 생유장애요인의 제거를 위해 굵은 가지(주간)까지를
잘라내는 기준이고, 약전정은 외관적인 수형을 다듬는 기준이다.”(2020년 적용 한국표준품셈)
2020년 적용 한국표준품셈의 가로수 가지치기 공사비 산정 기준표
문제는 이 한국표준품셈의 가로수 가지치기 공사 기준이 현실과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시민단체·자자체·업체 모두 동의합니다. 약전정이 강전정보다 실제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공사비 책정은 강전정이 약전정의 1.5배 정도로 책정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른 가슴 높이 직경이 51㎝ 이상인 나무를 하루 동안 작업하는데 배치하는 인원의 기준은 강전정이 ‘조경공 0.32명, 보통인부 0.89명’인 반면 약전정은 ‘조경공 0.22명, 보통인부 0.51명’에 불과합니다.
“이발할 때 바리캉으로 모두 밀어버리는 게 강전정이라면, 스타일을 만드는 게 약전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당연히 스타일 만드는 게 시간이나 수고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표준품셈은 거꾸로 약전정에 품셈을 더 낮게 책정하고 있습니다. “(조경업체 대표 ㄱ씨)
그런데 업체 얘기를 들어보면 현실은 한 번 더 꼬여 있습니다. 저렴한 ‘약전정 공사’에 맞춰 비용을 산출해 공고를 낸 뒤 실제 공사는 ‘강전정’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ㄱ씨는 “공고문에서 강전정인지 약전정인지 밝히지 않지만, 공사비를 보면 지자체 대부분이 약전정에 맞춰 비용을 산출해 공고를 냅니다. 하지만 실제 공사는 강전정으로 이뤄지고 공무원들도 이를 묵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무원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약전정 비용으로 진짜 약전정을 하면 인건비·장비 대여비 등 고려하면 수지가 안 맞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진우 대표는 “업체들 사정을 듣고 여러 지자체 담당자들에게 공사비를 제대로 책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약전정에 금액을 추가로 책정하고 현장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품을 받도록 하고 싶어도 근거가 없어 우리도 난감하다’고 답했습니다”라며 “표준품셈이라는 게 강제된 게 아니라서 필요하면 지자체가 자체 조례를 만들어서 하면 현실에 맞게 하면 될 텐데 표준품셈 핑계만 대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깃줄 안전관리 문제도 과도한 가지치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서울시 조경과 관계자는 “한국전력공사에서 전선 아래까지 제거해 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해 오고 있습니다. 바람 불면 나뭇가지 때문에 정전될 수도 있다고 하니 안 들어줄 방법도 없습니다”라며 “가지치기 문제는 전선 지중화와도 관련이 있고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깃줄 주변 가지치기 역시 시행 과정에서 안전과 무관하게 불필요한 가지치기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 가지치기 교육자료’를 보면, 나무 기둥이 중성선(고압선의 보조전력) 아래까지는 자라도록 해야 하며, 중성선 윗 부분에 맹아 가지를 남겨 우산형으로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선 아래 나무 기둥 윗부분을 모두 베어버리는 ‘두목작업’이 빈번하게 이뤄진다고 합니다. “
“조경업체에 약전정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기업(조경업체)들은 이익을 추구하니까, 나무톱으로 쉽게 툭툭 치고 나갈 수 있는 강전정을 선호합니다. 계속 감시할 수도 없고, 잠깐만 안 봐도 숭숭숭 쳐버리는 데 지침을 내고 교육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서울시 조경과 관계자)
한전 가지치기 30% 싸게 발주 “강전정밖에 못 해”
또 서울시와 달리 일부 지자체는 예산 문제 탓에 전깃줄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가로수 가지치기를 한국전력공사에서 시행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로수 관리보다는 전깃줄 관리가 더 고려될 수밖에 없고, 공사비 책정도 ‘전기 부문 표준품셈’을 따르다 보니 30% 정도 낮게 책정된다고 합니다.
올해 서울시 가로수 가지치기 교육자료의 ‘배전선로 가지치기’ 내용.
ㄱ씨는 “한전은 가로수 관리가 메인 업무가 아니다 보니 전선을 가리는 가로수 가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거하느냐 이걸 중점적으로 봅니다. 공사비도 적다 보니, 약전정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 못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나라장터에서 올 2월4일 한전 부산울산본부 가로수 가지치기 공고문을 보면 가로수 3206그루 가지치기 비용을 2억9993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그루당 약 9만3천원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광주 동구 공고(2월18일)를 보면 230그루 가지치기 비용을 3200만원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루당 13만9천원 정도입니다. 또 대구 동구 공고(2월26일)에서도 그루당 11만3천원 정도(1685그루에 1억9049만원)를 배정했습니다.
“가로수 불편 신고하는 일부 민원이 행정 좌우”
민원 역시 과도한 가지치기의 원인입니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시 가로수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나무(혹은 나뭇가지)를 잘라 달라’는 민원이 94%에 달했고, ‘자르지 말라’는 민원은 6%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간판, 표지판, 햇볕을 가린다”는 민원부터 “열매에서 악취가 난다”, “걷는 데 방해가 된다”는 민원까지 가로수를 불편해하는 시민들의 신고가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나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걸까요. 2019년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이 서울시민 82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는 이런 민원 통계와 달랐습니다. ‘과도한 가지치기로 가로수 미관 및 기능 저하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시민이 64%,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시민이 13%로 나타났습니다.
“잘라달라는 민원이 더 크고 공무원들은 그걸 해결해 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죠. 나무로 인한 장단점이 있을 텐데, 나무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나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행정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나무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냥 안타까워할 뿐이고… 이 시민제보 운동을 하게 된 것도 ‘정말 우리 사회의 나무를 대하는 마음이 이 정도인가’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결국 제도·기술적인 문제를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시민들의 여론과 지지잖아요. 그런 마음을 모아가려고 합니다.”(최진우 대표)
지난해에 이어 올해 2∼5월에도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과도한 가지치기 시민제보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서울환경운동연합도 이달 중 ‘시민감시단’을 꾸리기로 했습니다. 최 대표 말대로 시민들의 안타까운 마음들이 모여서 수십 년째 반복하는 ‘나무 죽이기 수준의 가지치기 관행’이 바뀔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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