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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y 7, 2021

젊은 암 생존자로 산다는 것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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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암 생존자로 산다는 것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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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20만명 이상이 암진단을 받는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3%로, 10명 중 7명 이상은 5년 이상 생존한다. 국내 암생존자는 120만명에 달한다.

암은 더 이상 과거처럼 ‘불치의 병’은 아니다. 그러나 완치가 돼도 암이 남기는 상처는 만만찮다. 암생존자의 ‘생존’ 모습이 제각각인 이유다. 같은 나이에 같은 암종을 겪었더라도 어떻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문제는 ‘암 그 이후’의 삶이 오롯이 개인의 몫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복귀의 성패 역시 개인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뿐 아니라 암생존자의 삶을 ‘암 이전의 삶’으로 돌려놓는 데도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열아홉 살 은진씨의 삶을 바꾼 암

유은진씨(가명·38)는 2002 한일월드컵에 대한 기억이 없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5월,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서울 대형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열아홉 살 은진씨의 삶이 달라졌다.

제일 먼저 대학교를 미래 선택지에서 지웠다. 은진씨 아버지는 충남 서산에서 농사를 짓는다. 신장 투석을 받고 있어 농사로 큰 수입을 내기 어렵다. 어머니가 일용직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생활을 꾸렸다. 은진씨는 의료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치료비 지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은진씨의 치료에는 돈이 들었다. 은진씨의 아버지는 빚을 내 목돈을 마련했다.

다행히 치료가 잘됐다. 골수이식도 받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은진씨를 두고 ‘정말 특이하게 잘된 케이스’라고 했다. 항암치료 기간은 8개월. 은진씨는 그 8개월을 ‘짧지만 긴 시간’으로 기억한다. 항암제 투약과 수혈을 번갈아 받았다. 항암치료가 끝난 뒤에는 서산과 서울을 오가며 외래진료를 받았다. 한달에 한 번, 두달에 한 번, 점차 간격을 늘렸다. 1년에 한 차례씩 골수검사를 받았다. 경과가 좋았다. 그 사이 은진씨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1년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5년 뒤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즈음 은진씨 아버지는 대출 빚을 청산했다. 완치 후 은진씨에게는 고등학교 졸업장과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남았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은 국비지원 무료교육 과정을 밟아 땄다. 2004년 은진씨는 지역 병원에 취업했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추적검사를 받던 때다. 다행히 후유증이 없었고 몸도 잘 버텨줬다. 첫 직장이어서 의욕도 넘쳤다. 업무도 수월했다. 문제는 일한 지 3개월이 지나 생겼다. 병원 내 은진씨의 암 병력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그때부터 병원 직원들이 은진씨를 피하기 시작했다. 업무지시를 하지 않았고, 근무에서 열외되기 시작했다. 배제되는 업무가 하나둘 늘면서 자연스럽게 병원 조직 내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결국 은진씨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은진씨는 “따돌림당한 건 아니지만 불편해서 병원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며 “쟤한테 일 시켰다가 문제 생기면 우리 책임’이라는 분위기여서 늘 가시방석 같았다”고 말했다.

암 병력은 어딜 가도 은진씨를 따라다녔다. 지방 소도시여서 더 쉽게 말이 돌았다. 암치료를 받을 때보다 완치 이후 받은 주변 시선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전염되는 것 아니냐며 은진씨와 접촉을 꺼렸다. 은진씨의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진즉 무너졌을 것이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 <아만자>의 한 장면. 레진코믹스 웹툰 ‘아만자’ 캡처

김보통 작가의 웹툰 <아만자>의 한 장면. 레진코믹스 웹툰 ‘아만자’ 캡처

스무 살 갓 넘은 은진씨는 다시 살길을 찾기로 했다. 대학 진학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포기했다. 학업지원 프로그램이 있을까 알아봤지만 암생존자는 지원대상이 아니었다. 취업도 여의치 않았다. 지자체 직업 재활 상담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간혹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 가운데 관심이 있는 직종도 있었는데 고가의 ‘유료’ 프로그램이었다. 그나마 서울과 일부 대도시에서만 시행됐다.

현재 은진씨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한다. 종종 암병원을 찾아 자원봉사 활동도 한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배워보려고도 했는데 지금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어요. 제 삶이 불행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아쉽죠. 직업 체험이나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저도 다른 직업을 가졌을 수 있고, 어쩌면 대학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암, 누군가에겐 기회

정기태씨(가명·30)는 은진씨와 같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2006년에 암이 발병했다. 은진씨와 같은 병원에서 골수이식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2010년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후 정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치료 과정에서 학업이 중단됐고, 학교에 복귀한 뒤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고교에 진학한 정씨는 자신의 암 경험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대외적으로 알렸다. 청년의 암극복기를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력서에 넣었다. 랜스 암스트롱 프로젝트에도 참여했고 암 경험을 토대로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정씨는 암투병기를 지렛대 삼아 아이비리그에 입학했다. 외상 후 성장, 이른바 포스트 트라우마틱 그로스(Post-Traumatic Growth)를 이뤄낸 사례다.

두 사람은 같은 병을 앓았고, 동일한 병원에서 비슷한 치료기간을 거쳐 완치됐다. 그런데 이후 삶은 완전히 달랐다. 조주희 교수(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센터장)는 두 사람의 차이가 암생존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사회구조에서 생긴다고 본다. 조 교수는 “두 사람 간 격차는 시스템의 부재에서 온 것”이라며 “암치료 이후 모든 것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암 이후의 삶도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암치료가 끝난 뒤에도 암은 생존자의 삶에 영향을 준다. 특히 은진씨와 같은 저소득 암생존자는 경제적 타격이 크다. 그럼에도 치료 이후 이를 보전할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 학업 단절로 인해 전문 기술과 경력을 쌓을 기회 역시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취업을 한다 해도 소득 수준이 높지 않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이에 대해 이인정 교수(호서대 사회복지학부)는 ‘저소득 암생존자의 구직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보건사회연구 2019)에서 “저소득 암생존자의 경우 단순 노무 등 일용직이거나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크고 집중적 치료가 요구되는 치료 과정으로 인해 직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며 “저소득 암생존자의 치료 종결 이후 구직활동 및 직장복귀를 돕는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암병원 주사치료실에서 암환자들이 항암제를 맞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 암병원 주사치료실에서 암환자들이 항암제를 맞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먹고살기’ 저소득 암생존자의 고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저소득 암생존자의 ‘먹고사는 문제’는 여전히 개인의 몫이다. 올해 고3 이준영군(가명·18)은 골육종을 앓고 있다. 그의 고민은 대학 입학이 아니다. 이군은 고등학교 입학 이후 늘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왔다. 취업을 위해 대학을 원하는데 진학은 반쯤 포기했다. 여덟 살에 골육종 진단을 받은 뒤 이군은 지금껏 ‘사이버 학교’를 다녔다.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5개월가량 학업이 중단됐다.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병원학교’에 가기도 한다. 병원학교에 다닌 기간은 2년 정도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병원학교는 주로 재활과 놀이 중심 커리큘럼이기 때문에 정규 수업과는 거리가 있다.

현재 이군은 부산 소재 일반 고등학교에 학적을 두고 있다. 수업은 사이버 학교를 통해 받고 중간·기말 고사는 ‘본학교’에 가서 치른다. 성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본학교 학생들과 경쟁이 안 된다. 이군은 “학업을 따라간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그나마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면 시험 팁이라도 받을 텐데 그것도 못 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했다.

학교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적을 내용이 없다. 사이버 학교에서 하는 활동은 본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이군의 관심 분야는 산업디자인이다. 대학에 간다면 디자인 전공을 할 생각이다. 진학을 위해 실기 연습도 틈틈이 하고 있다. 이군은 장애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장애인 전형이 있는 대학을 알아보고 있는데 예체능 학과는 장애인 전형이 거의 없어 고민이다.

이군이 대학을 가려는 이유는 취업 때문이다. 이군의 표현에 따르면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군은 “대학을 안 가고 할 수 있는 일 대부분이 몸으로 하는 일인데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며 “적당히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이 간절하다. 그런 직업이 여러개였으면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군의 아버지 이진영씨(가명·자영업)는 정부가 현미경으로 암생존자를 들여다봐달라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암을 겪고 치료를 오래 받다 보면 학업도 따라가지 못하고 직업도 갖지 못합니다. 돈이 좀 있는 집은 애한테 복권방을 열어주고 아니면 가게를 차려주고 하는 데 없는 집은 아무것도 못 해줘요. 암생존자들이 사회에 나와 뭘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학교도, 직업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합니다.”

본인부담상한제와 중증환자지원 등 암치료에 대한 지원책이 있지만, 이군처럼 암치료가 장기화되는 가정에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여전히 비급여 항목이 있는데다 치료 외적으로도 가정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이 많다. 암생존자는 암이력이 없는 사람들에 비교해 파산할 위험이 2.5배 높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약 30%에 이른다는 해외 연구도 보고된 바 있다. 이씨는 “우리처럼 입원을 많이 하고 수술을 자주하면 병원비만 일년에 몇천만원이다. 이렇게 몇년 버티면 집이 기운다. 중산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가는 건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암은 낙인과 편견을 부르는 질병이다. 암생존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완치 이후에도 부정적인 사회 인식을 우려하며 살아야 한다. 대학 졸업반 김지연씨(가명·22)는 9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악성 림프종을 진단을 받았다. 6개월간 12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았다. 온라인 수업으로 출석 인정을 받아 유급 없이 학업을 이어갔다. 항암이 끝난 뒤에는 사설 학원에 다니며 부족한 공부를 했다. 암치료를 받고 학교에 가면 왕따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김씨는 따돌림을 겪지 않았다. 발병 5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고, 대학 진학도 성공했다.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씨의 암투병은 부끄러운 경험이 아니었다. 주변에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취업 앞두고 상황이 달라졌다. 구직시장에서 암 경험은 ‘마이너스’ 요소다. 기업들은 암을 겪은 구직자를 잘 뽑지 않는다. 암 경험은 치부가 됐다. 최근까지도 김씨는 채용 신체검사에서 암진단 이력이 드러날까 고민했다. 채용을 통과한다 해도 김씨의 걱정은 끝나지 않는다. 김씨는 취업 후에도 암 병력을 숨길 생각이다. 직장 동료들이 자신에게 편견을 갖고 바라볼까 두렵기 때문이다.

2019년 대한암협회와 국립암센터가 암생존자 85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1∼3순위 복수응답)에서 ‘암투병 경험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암생존자 가운데 63.7%가 그 이유로 ‘편견’을 꼽았다. 개인 사정(35.4%)과 동정 우려(29.2%), 차별 우려(16.8%)가 뒤를 이었다.

암생존자들은 강제 ‘암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특히 젊은 암생존자가 느끼는 강도가 심하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의 연구조사(15세 이상 암환자 8510명 대상)에 따르면 15세에서 39세 환자가 느끼는 우울, 불안, 두려움이 65세 이상 환자대비 2.6배 이상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암생존자에 대한 색안경이 가장 무섭다”며 “암생존자 취업 지원을 위해 채용 가산점도 만들 수 있고, 암생존자 입시 전형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교에 들어가고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차별을 받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제발 사람들이 편견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1-05-07 23:53: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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