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8.10 03:00
얼마 전 정가일 작가의 추리소설 '신데렐라 포장마차'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소설이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 주인공이 요리사였기 때문이다. 만화나 영화와 달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사는 대개 요리보다도 훨씬 덜 중요한 존재다. 음식을 만드는 주인공이라고 하면, J 라이언 스트라돌의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과 조안 해리스의 '초콜릿'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우와, 요리사와 추리 소설이라니!' 나를 위해 쓴 소설 같았다. 책 속에는 '콩소메' '뵈프 부르기뇽' '물 마리니에르' '솔 베로니크' 같은 프랑스 요리가 등장한다. 발음조차 쉽지 않은 이 요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떤 모양인지를 너무도 잘 아는 나는 이야기 속으로 단숨에 빠져들었다.
소설 속 '신데렐라 포장마차'는 매일 다른 곳에 나타나 하루에 단 1시간, 퀴즈를 푼 사람에게만 음식을 맛볼 기회를 주는 기이한 푸드 트럭이다. 프랑스인 주인은 여기서 프렌치 코스 요리를 단돈 9800원에 판다. 그러고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어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중 한 명이 프렌치 레스토랑의 요리사다. 이들은 각자의 특기를 살리고 서로 도와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간다. 이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이 현실에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속 시원히 풀어낼 능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각자의 선량한 마음을 모아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 말이다.
호텔의 주방은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다. 요리사들은 다른 이들의 기쁨을 위해 일한다. 직업 특성상 고객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 된다. 온 세상이 주방처럼 되면 좋지 않을까? 단순하고 유치한 발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훌륭한 요리란 대부분 복잡하지 않다. 그저 좋은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찾아 살려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오늘도 주방에서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만들며 단순하고 순수한 세상을 꿈꾼다.
August 09, 2020 at 1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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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온 세상이 주방처럼 된다면?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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