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사학’을 자처하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개교 이래 처음 받은 종합감사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부모찬스’는 한두 건이 아니었고, 교수들은 법인카드를 들고 유흥업소를 드나들었습니다. 일부 교수의 일탈로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두 대학의 교육부 종합감사 결과를 톹아봤습니다.
그동안 교육부는 비리 의혹이 제기된 대학이나 학생 수 4000명 이상의 대학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을 통해 종합감사 대학을 선정하고, 해마다 3곳 정도에 종합감사를 벌여왔습니다. 이러다보니 1979년 이후 교육부 종합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립대가 전체의 31.5%(113곳)에 달하는 등 감시의 사각지대가 발생했습니다.
사립대학의 책무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6월 언론 인터뷰에서 “감사 인력을 증원해 사립대 종합감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종합감사를 받지 않았으면서 학생 수 6000명 이상 대학을 우선으로 해서, 수도권 등의 주요 대학 종합감사를 2021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히게 됩니다. 서울 지역에서는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서강대, 연세대, 홍익대가 종합감사 대상에 포함됐고 경기·강원 지역에서는 가톨릭대, 경동대, 대진대, 명지대가, 충청 지역에서는 건양대, 세명대, 중부대, 영남 지역에서는 동서대, 부산외대, 영산대가 포함됐습니다.
지난 7월16일 16곳 가운데 연세대와 홍익대의 종합감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고, 이달 24일에는 고려대의 감사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부정입학에 교수가 자녀에게 직접 ‘A학점’ 주기도…‘부모찬스’ 남발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적발된 ‘부모 찬스’ 가운데 가장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건은 이경태 전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딸의 대학원 부정입학입니다. 교수들이 서로 짜고 입학전형 단계별로 점수를 조작했기 때문입니다.
연세대와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전 부총장 재임 시절인 2016년 4월 대학원 입학전형에서 경영대학 교수들은 그의 딸인 이아무개씨를 합격시키려고 서류심사와 구술시험에서 점수를 조작했습니다. 당시 1명을 뽑는 전형에는 모두 16명이 지망했었다고 합니다. 이씨는 서류심사 단계에서 정량영역인 학점 등 성적 점수가 공동 9위에 그쳤습니다. 학부 전공도 모집 분야와 달랐죠. 그럼에도 이씨는 구술시험 대상자(16명 가운데 8명)로 선정됐습니다. 서류심사 평가위원들은 이씨에게는 정성영역(자질 등)에 만점(95점)을 주고 그와 정량영역 점수가 같거나 비슷한 지원자 4명에게는 정성영역 점수를 낮게 줬기 때문입니다. 구술시험에서도 평가위원들은 서류심사 1·2위인 지원자 2명에게는 47점과 63점을 주고 이씨에게는 만점(100점)을 줘 임의로 당락을 바꿨습니다.
교수가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고 직접 ‘A학점’을 준 사실도 여러 건 적발됐습니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2017년도 2학기 회계 관련 과목을 열고 식품영양을 전공하는 딸에게 수강을 권유했습니다. 시험 문제와 정답지는 딸과 함께 사는 집에서 작성했습니다. 딸은 A+를 받았는데 이 교수는 해당 과목의 성적 산출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고려대 대학원에 재직 중인 한 교수도 2017년도 2학기 1과목, 2018년도 1학기 2과목 등 3개 과목을 자녀에게 듣게 하고 모두 A학점을 줬지만 정작 성적 산출 근거인 답안지는 대학에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고려대 교수도 2016년도 1학기에 자녀에게 직접 A+ 학점을 주고 답안지는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고려대는 자체 조사로 이를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고려대는 자체 조사 대상 기간(2014~2018학년도)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조사 시점인 지난해는 졸업했다는 이유로 부모의 수업을 들은 자녀 8명을 조사에서 누락하기도 했습니다. 조사에서 누락된 8명은 총 13개 과목을 수강했는데 A+ 학점이 8과목, A 학점이 1과목 등 대부분 높은 학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럼에도 고려대는 자체 조사 결과 ‘공정성을 저해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교육부가 권고한 교수-자녀 간 강의 회피, 사전 신고제 등을 교원과 학생들에게 안내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교육부에는 관련 규정을 만들지 않고도 만들었다고 허위 보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한편, 고려대에서는 ‘부모 찬스’로 보기는 어렵지만 모집요강과 다르게 체육 특기자를 선발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서류평가로 3배수를 뽑겠다고 공지해놓고 4배수를 뽑는 바람에 최고 점수 수험생 등이 탈락하고 추가 선발자들이 합격했습니다.
강남 술집에서 법인카드 쓴 교수들…거기서 뭐 하셨어요?
종합감사 결과에서 ‘부모찬스’ 다음으로 충격을 준 것은 교수 등 교직원들이 법인카드를 들고 유흥업소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고려대에서는 보직교수 등 교직원 13명이 2016년 3월부터 2019년 12월 사이 서양음식점으로 위장한 서울 강남 소재 유흥업소에서 221차례(1인당 1~86차례)에 걸쳐 법인카드로 6693만원을 결제한 사실이 종합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앞선 2018년 회계감사에서도 고려대 부속병원 소속 교직원 13명이 유흥주점과 단란주점에서 법인카드로 631만원을 결제한 사실이 적발된 바 있는데 또 다시 적발된 것입니다.
연세대 부속병원인 연세 의료원에서도 교직원 14명이 유흥업소·단란주점에서 45차례에 걸쳐 1669만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연세 의료원은 질병이나 출산 등으로 휴직 중인 전공의 20명에게 당직근무 수당 6663만원을 부당하게 지급했다가 전액 회수 조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법인 카드를 들고 유흥업소를 드나드는 것도 문제지만 법인 회계 관리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연세대는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나온 소득의 80% 이상을 대학 운영비로 사용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2016~2018년 3년 동안 62~70%만 사용해 256억원의 법인 재산을 불렸습니다.
직원 채용때 사설 학원 배치표 보고 출신대학 차별
직원을 채용하면서 출신 대학에 따라 차별한 것도 연세대와 고려대가 판박이였습니다.
고려대학교 의료원은 2016~2019년 사이 14개 직종에 대해 94차례 정규직 채용을 실시했는데요, 사설 학원의 수능배치표를 참고한 대학순위표를 만들어 지원자 649명을 출신대학에 따라 5개 등급으로 구분하고 26~30점씩 차등점수를 줬습니다. 2018년 정규직 공채부터는 출신대학에 따라 주는 배점을 32~40점으로 더욱 늘리고, 학점 항목에서도 출신대학에 따라 가중치를 적용했습니다.
연세대 의료원 역시 2016~2019년 사이 15개 직종에 대해 67회차례 정규직 채용을 실시하면서 사설 학원 수능 배치표를 참고해 출신대학에 따라 5개 등급으로 구분, 최저 50점에서 최대 80점까지 차등점수를 준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이같은 행태는 합리적 이유 없이 출신학교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고용정책기본법 제 7조를 위반한 것입니다. 명백한 불법입니다.
교비로 교직원에 순금 증정·벌금형 받은 교수 징계도 안해
또 하나 눈여겨 볼 지점은 대학들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입니다. 고려대에서는 ‘리베이트’ 수수로 보건복지부에서 의사 자격을 정지당한 의과대학 교수에 대해 징계의결 요구를 하지 않고 ‘경고’ 처분만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연세대에서는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법원에서 벌금형(500만원)을 선고받은 의대 교수에게 3년이 다 되도록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사실이 종합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해당 교수가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대상은 여대생을 청부살해한 혐의로 2004년 무기징역형을 받았던 국내 중견기업 회장의 부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밖에 환자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대리수술을 하거나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에 알선해 각각 1개월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교원 2명에 대해서도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퇴직자에게도 각별했습니다. 고려대는 2018년 교육부 회계부문 감사에서 구체적인 집행기준 없이 교비로 순금·상품권을 사서 교직원에게 준 것이 드러나 기관경고 등의 처분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2019년 2월부터 5월 사이에 13개 부서에서 교직원 22명에게 ‘퇴직자 전별금’, ‘보직자 임기만료’ 등의 명목으로 1989만원 어치의 순금과 상품권을 교비로 사준 사실이 이번 종합감사에서 재차 드러났습니다.
교육부는 이번 종합감사 결과에 따라 연세대에 중징계(26명), 경징계(59명), 경고·주의(336명) 등을 요청하고 부당하게 지출된 21억여원에 대해 전액 회수하도록 했습니다. 고려대에도 중징계(24명), 경징계(38명), 경고·주의(168명)를 요청하고 부당하게 지출된 2억9천여만원을 전액 회수하도록 했습니다. 비리와 부정이 심각한 건에 대해서는 고발(연세대 8건, 고려대 1건)과 수사 의뢰(연세대 4건, 고려대 2건)도 이어졌습니다.
대학 당국은 징계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동시에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명문 사학’을 자청해온 지난 세월을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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