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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4, 2021

워킹맘의 무임금 가사노동, 당신 저녁은 누가 차려줬나요?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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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무임금 가사노동, 당신 저녁은 누가 차려줬나요? - 한겨레

[토요판] 조한진희의 잘 아플 권리
⑪워킹맘의 일상 속 산재

눈뜸과 동시에 할 것 잔뜩
퇴근 후 뛰어야 할 2라운드
육체 피로와 함께 고단한 정신
아프려야 아플 시간도 없어

워킹맘의 무임노동은 취급 안돼
“진짜 죽을 것 같아” 빈말 아냐
과로 인한 피해입으면 산재될까?
우리도 돌봄민주주의 만들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 진짜 죽을 것 같아.” 분노와 울음이 묵은 먼지처럼 엉겨 있었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정신없이 사는 게 힘들다고 했다. 평일은 하루에 5시간 넘게 자는 날이 드물다며, 과로가 일상이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워킹맘인 친구가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간, 전화로 토로한 말들이다. 그는 결혼한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 눈뜨면서 출근이 시작된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우고, 옷이나 준비물 같은 것을 점검해주고, 그 뒤 비로소 출근을 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 숙제, 다음날 식사 준비, 세탁이나 청소 등을 하고 밤 12시 정도에 일과를 마친다. 그가 자신의 노동시간을 기록해본 것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회사일과 집안일을 합쳐 13시간가량 일한다. 사실 출퇴근 시간에도 휴대폰으로 일을 한다. 식료품이나 가족들의 옷 등을 인터넷으로 구입하거나, 아이들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전달되는 가정통신문 등을 확인하고, 아이들과 휴대폰 메시지로 소통한다. 그는 종종 아프려야 아플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남편과도 가사 분담을 하지만, 남편은 시키는 일을 최소한으로 할 뿐, 집안일을 먼저 살피고 필요한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주 7일, 주당 73시간 일하는 워킹맘
그가 괴로워하는 건 과로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함께 정신적 고단함이었다. 그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고 했다. 아이들을 더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동료들만큼 야근을 자주 못 해서, 시집 대소사에 자주 가지 못해서, 친정 대소사는 못 챙기는데 부탁은 자주 해서, 미안함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미안함이 한번씩 억울함과 분노로 변신하는 때가 있고, 일상에 축적된 과로 위에 억울함과 분노까지 겹치면 정말 죽을 것 같다고 했다. 내게 전화한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신문에 나오는 ‘워킹맘 과로사’가 자신의 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과로는 심혈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실제 ‘과로사’와 같은 ‘산재’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판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억울함이나 분노 같은 격한 감정 또한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그런 순간마다 죽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은 막연한 은유가 아니다. 보통 산재 기사를 보면 컨테이너나 타워크레인 같은 장비들 사이에서 끼임, 매몰, 강타, 추락 같은 단어가 수북하다. 많은 워킹맘들이 회사일과 집안일 사이에 ‘끼임’, 돌봄노동에 ‘매몰’, 가부장적 문화에 ‘강타’, 삶의 자신감은 ‘추락’하는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자녀와 동반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몇달 뒤 광주에서도 동일한 죽음이 있었다. 당시 장애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돌봄공백 심화가 부른 타살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분들의 죽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여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돌봄과로 자살’이라고 말이다. 워킹맘의 과로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이후 돌봄노동의 양은 늘어나고, 재택근무로 회사일과 집안일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좀 더 복잡한 고통이 확장되고 있다. 절대적 노동시간도 그렇지만 스트레스로 인해서, 못 견디겠다고 호소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더 자주 듣게 된다. 워킹맘의 과로(사)는 산재일까, 아닐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과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질병부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59시간보다 265시간 더 길고, ‘과로사’라는 말을 만든 일본보다도 314시간이 길다. 우리나라 20~69살 전체 인구 중 주당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비율은 남성 14%, 여성 5.1%다. 이 통계는 당연히 임노동을 하는 직장에서의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실제 노동시간, 즉 집에서의 무임금 노동까지 합친다면 60시간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비율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한국은 맞벌이 부부 비율이 46%이고, 맞벌이 가구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남자 54분, 여자 187분으로 여성이 3.5배가량 더 일한다(통계청, 2019년). 남성은 가사노동 시간을 합쳐도 지금 통계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겠지만, 여성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앞서 말했던 워킹맘 지인의 경우 회사에서 주 5일 45시간 정도 일하고, 집에서 주 7일 28시간 정도 일한다고 했다. 주당 73시간을 일하는 셈인데, 이는 여러 언론에서 다룬 워킹맘들의 노동시간과 대동소이하다. 지난달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낸, 주당 55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으로 2016년 한해 동안 74만5000명이 사망했다는 발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워킹맘들이 살아 있는 것에 오히려 놀라워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워해야 할 것은 앞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처럼, 과로나 과로사를 다루는 통계에서 여전히 임노동 시간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 그래서 실제 과로와 과로사의 사선을 넘나들며 살고 있는 워킹맘의 현실은 지속적으로 비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가 더 잘했더라면
카트리네 마르살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통해 지적했듯 애덤 스미스가 ‘저녁을 차려준 어머니의 노동’을 경제적 요소로 포함시켰다면, 생산비용 산정 방법부터 국민총생산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에 대한 구성과 배치, 의미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과로와 과로사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이 지금과 제법 달랐으리라. 피로회복제 광고의 주인공은 넥타이 맨 중년 남성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이었을 테고, 과로사의 상징은 중년 남성이 아니라 워킹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지금의 노동시장 모델도 적극적으로 변화했을지 모른다. 알다시피 현대 자본주의 노동시장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로 형성됐다. 남성이 가족 임금 벌어오는 노동자 역할을, 여성이 그런 남성 노동자에게 무상으로 돌봄노동 제공을 함으로써 자본은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 이윤창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성별을 떠나 임금 노동을 하는 게 ‘자연스럽고’ 보편에 가까운 일이 되었으나, 돌봄노동을 하는 것은 여전히 여성에게 할당되어 있다. 자본은 여전히 이윤을 잘 유지하고 있고, 여성들은 직장에서 임금노동과 집에서 무임금 노동을 병행하며 사선을 오간다. 이런 현실에 대해,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인 낸시 프레이저는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모델은 모든 사람을 돌봄의 주체로 상정한다. 즉 퇴근하면 차려준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쉬면 되고, 아이나 노년의 부모는 아내가 돌봐주고, 아침이면 말끔히 세탁된 옷을 입고 출근하는 돌봄 책임을 면책한 남성 노동자를 전제로 한 모델이 아니라. 누구나 퇴근 후 누군가를 돌볼 책임을 가졌다는 전제로 직장과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다. 돌보는 몸이 표준인 사회인 것이다. 이런 제도적 변화와 함께 일상의 변화를 추동해내는 게 필요하다. 나는 회식 자리에 빠지지 않는, 어린아이가 있는 남성 동료들에게 종종 묻는다. “이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애는 누가 봐?” 워킹맘들은 회식 자리에서, 애는 누가 보냐는 직접적 질문 혹은 암묵적 시선을 받는다. 반면 워킹대디들에게는 그런 질문이 거의 도착하지 않는다. 비민주적인 돌봄이 고착화된 사회다운 현상이다. 물론 이 질문은 아이 양육을 가족에게만 분담시켜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양한 공공보육은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공보육이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집안에서 아이 돌봄을 0으로 수렴시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애는 누가 보냐고 남성들에게 질문했을 때,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내가 애들을 워낙 좋아해서 그 사람은 퇴근 후 애들 보는 게 힐링’이라는 주장, ‘애들이 잠든 뒤에 들어가야 집에서 제대로 쉴 수 있다’는 하소연, ‘전업주부니까 밤까지 애 보는 게 당연하다’는 당당함까지. 그럴 때마다 나 또한 다양한 답변을 돌려줬는데, 그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돌봄민주주의로 완성될 수 있는데, 네가 민주주의를 완성시킬 수 있는 바로 그 시민주체야.”
▶ 조한진희 여성·평화·장애 관련 운동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탈식민페미니스트. 국제 현장 연대 활동에서 건강이 손상된 뒤 투병 경험을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다. 공저로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비거닝>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있다. 사회단체 ‘다른몸들’에서 활동 중이다. 아픈 몸을 둘러싼 사회·경제·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2021-06-05 02:26:1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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