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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ne 5, 2021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가난의 무게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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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가난의 무게 - 한겨레

[토요판]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⑪ 사당동 더하기 33
<사당동 더하기 33> 한 장면.
<사당동 더하기 33> 한 장면.
가난한 이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만날 때 가끔 의문을 품는다. 그들은 왜 저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하지만 ‘가난’의 다른 말은 ‘선택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33>(2020, 조은 감독)은 1986년 사당동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만난 한 가족을 담은 33년간의 기록이다. 온 나라가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흥분에 들썩였지만 가난한 동네에서는 철거가 시작되었다. 사회학자인 감독은 주거 빈민 문제를 연구하러 찾아간 사당동에서 만난 정금선씨 가족의 삶을 4대에 걸쳐 집요하게 응시한다.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난 온 정씨는 홀로된 몸으로 자식과 손자들을 길러내며 억세게 살아왔다. 미군부대 쓰레기 장사, 노점상, 포주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사당동이 철거될 때 정씨 가족은 운 좋게 서울 중계동에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한다. 그는 돈 때문에 공공근로를 신청해놓고도 허리가 아파 일을 어찌하나 걱정하다가 공공근로가 시작되는 날 돌아가신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가족들은 구성원을 확장해가며 또 다른 가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감독은 2009년 <사당동 더하기 22>를 완성한 후, 10년의 시간을 더하여 다음 세대의 모습을 담았다. 다큐멘터리는 출연진의 삶을 통해 빈곤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번째 질문은 가난을 고착화하는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이 가족들은 정말 다양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 정씨의 장손자는 1년 이상 다녀본 직장이 없다. 그를 1년 이상 고용해주는 사업장이 없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온 그가 4대 보험이 제대로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일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얼마 전 실업급여를 주기적으로 반복 수급하면 수급액이 최대 절반까지 줄어드는 정책이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될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정부는 실업급여를 메뚜기처럼 반복해서 수급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겠다고 하지만, 고용 시장 자체가 이미 불안정하게 메뚜기처럼 사람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이 기사에서 가려져버렸다. 일하기 싫어하고 ‘세금 잡아먹는 게으름뱅이’들에 대한 편견은 곧바로 가난한 자들의 혐오스러운 초상을 만들어낸다. 두번째 질문은 ‘빈곤’한 가족 안에서 여성의 ‘일’은 어떤 종류이며 어떻게 이 가족을 지탱해오고 있는가이다. 정씨의 둘째 손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데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력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해왔다. 은행 열매를 까거나 미싱을 돌리는 등의 부업은 작업물당 몇십원에서 몇백원밖에 받지 못하지만 실로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독박 육아를 하면서 장애가 있는 그가 안정적인 노동 시장에 나갈 수 없을 때 열린 선택지는 노래방 도우미 일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받는 팁이 상대적으로 넉넉하니 이제 부업은 더 이상 안 해도 되리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벗어날 수 없다. 노래방 도우미로 잘나가기 위해 얼굴에 보톡스를 맞고 그 일에 맞는 ‘얼굴’을 만들어내는 데도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노래방 도우미 일도 나이 오십이 넘어가면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방황하고, 학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 어린 딸들이 엄마와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 여성에게 주어진 노동 시장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편하고 쉽게’ 돈을 번다며 혐오의 시선을 드러낼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지 ‘빈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나아가, 다큐를 통해 빈곤을 목도하고 있는 감독과 관객의 위치성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던진다. 감독은 카메라 뒤로 숨지 않고 사회학자로서 이 가족과 어떻게 자신이 관계 맺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가족은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늘 웅얼거리듯 말한다. 이런 그들의 언어를 바로바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감독의 모습이 계속 등장한다. 그렇게 33년이나 가난을 응시한 감독이 영화 말미에 가난의 무게를 담아낼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때, 그 말은 묵직하게 가슴속에 남아 관객이 ‘가난’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감독
▶ 강유가람 감독은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2021-06-05 10:59:0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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